[이진수의 TRIMMING DREAMING]

1편. 런던 어느 철도역의 한 장의 사진

 

유래 없는 폭염으로 온 나라가 더위에 허덕이면서 모든 눈과 귀를 런던 올림픽 소식에 열광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손연재,박태환,펜싱,양궁, 유도,축구 동메달에 환호하며 모두들 보내셨을테죠? 올림픽 기간 동안에 우리는 참 많이 웃고 환호하며 감동하였습니다.

저에게 런던은 이번 여름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어느 날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사진학과 여자후배가 런던으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해왔습니다. 오랫동안 영국에서 거주하면서 파인아트 사진 작업을 해오던 그녀는 졸업 후엔 거의 보지 못했으니 15년 이상 연락을 전하지 못했던 셈이었습니다. 그녀가 해오던 사진 작업은 어찌보면 흥미롭고 다소 엽기적이었습니다. 자신의 10년이상된 먼지, 머리카락을 모으고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뭉쳐진 그 물질들을 촬영해서 사진작품으로 발표도 했었던 후배였습니다. 나에게 오래 전에 메일을 보내와서 ‘오빠! 잘 지내? 혹시 오래된 오빠의 머리카락이나 먼지 등이 있으면 한 동안 모아줄 수 있어?’ 라는 메일을 받고 기겁했던 기억이 스르륵 났습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온 것입니다. 게다가 사진 하나를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주었는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오빠 오랜만이지? 런던 킹스크로스 역을 지나다가 오빠 사진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지 뭐야. I feel proud of you…’ 런던 철도역 킹스크로스 역사에 제 사진작품을 전시했는데 그것을 후배가 우연히 발견하고 연락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 직전에는 영국인들이 더욱 자랑스러워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바로 ‘다이아몬드 쥬빌리 축제(diamond jubillee festival)’였습니다. 이 행사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즉위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로 런던올림픽 바로 전에 열리면서 축제의 열기가 한층 뜨거웠습니다.

이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런던 중심부의 전철역 내의 광고보드들을 모두 아트작품으로 바꿔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art below 라는 전시기획단체에서 기획하여 저도 참가하였습니다. 런던올림픽과 맞물리면서 굉장히 흥미로운 이벤트였고 제 사진도 런던 심장부에서 홍보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의미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제가 선보인 작품은 한복을 입은 여자의 뒷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korean portraitureHANBOKplate #1의 타이틀로 킹스크로스 역사에서 전시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 전시되었던 사진을 후배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해왔던 겁니다.

제가 발표한 사진은 전통한복 배자와 조바위, 꽃 화관을 쓴 여자의 뒷모습을 촬영한 포트레이트입니다. 오래된 미인도처럼 세월의 무게가 베어 나오는 한지의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갱지에 잉크젯프린트를 하고 그 프린트를 다시 촬영하고 다시 후반작업을 통해서 종이의 질감까지도 재현해 낸 작업입니다. 한복의 색감과 화관,하늘색 빛의 왕실의 비녀까지 아름다운 한국적인 미묘한 뒷모습의 느낌이 묘한 매력을 던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사진 여백의 오른쪽에는 한글로 ‘이진수인’이라고 낙관도 찍었습니다.

 

 

무척 신기하더군요. 오래동안 연락이 안되던 후배가 우연히 지나다 내 작품을 먼 타지에서 발견해 내다니. 마치 케냐에서 누렁이를 발견할 기분일까요? 티베트사원에서 신부님을 발견한 기분일까요? 런던의 킹스크로스역에서 15년지기 후배가 지나가다가 제 사진을 발견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제가 이 사진을 런던에 전시하고 싶었던 이유는 런던의 심장부에서 우리나라의 전통복식의 아름다움을 우연히 지나치는 런더너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유동인구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사실 국내 촬영 스케줄과 영화제 참석 때문에 런던 현지로 날아가지 못해서 아쉽긴 했지만 분명 저는 한복사진을 다이아몬드 쥬빌리와 올림픽 기간에 그 현장에서 선보일 수 있어서 마치 올림픽에 출전이라도 한 듯 뿌듯했답니다.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은 서울역보다도 더 복잡한 철도역으로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역으로 가기 위해 급행열차를 타는 장면의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영국과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유로스타를 타기위해선 이곳을 이용해야 합니다. 박지성과 기성용만 국위선양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은 런던의 어느 철도역에서 물끄러미 런더너들에게 자신의 자태를 빛내어 보이고 있었습니다.

런던의 후배에게 기분 좋은 연락을 받고 전철을 타고 귀가하면서 조금은 착찹한 경험을 했습니다. 압구정역에 내려 역내를 걷고 있는데 여러 광고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졌습니다. 압구정이라는 90년대를 풍미했던 전철역사에는 온통 성형병원들의 광고 와이드컬러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십여 개 업체의 성형전 ,후 비교 사진들이 큼직하게 서로 뽐내고 있었죠. 마치 이것이 우리의 외모위주의 비뚤어진 사회단면을 풍자하는 리얼한 거대한 사진 기획전시를 보는듯 했습니다. 성형전,후를 비교해 놓은 포트레이트를 모아둔 사진전. 만약 압구정역사가 커다란 전시장이고 이것이 기획전이라면…이것을 기획한 (스스로 기획하지 않았겠지만 ) 관계자들은 뉴욕의 MOMA나 구겐하임미술관으로 보내도 될 듯합니다. 아쉽게도 이것은 전시가 아니라 볼썽사납게 도배된 광고들이었습니다.

문화예술강국은 근엄한 뮤지엄이나 전시장의 작품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런던에서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스럽게 생활 속의 공간에서 우리의 예술적 가치를 뽐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더욱 대한민국의 예술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런던이라는 나라에서 내 사진 한 장을 걸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평범한 장소에서조차 그 곳을 예술적인 가치로 채울 수 있는 그 기회의 가치를 더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사진을 보내준 고마운 런던의 후배의 작품을 위해 , 또한 생활 속의 예술 실천을 위해 먼지를 모아볼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먼지 채집은 힘들듯 합니다. 가을철 엔 비염을 달고 살기 때문에. ^^ 여러분도 환절기 컨디션 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 본 컬럼은 한국경제tv와 네이버에 연재된 이진수 컬럼 ‘trimming dreaming’을 리포스팅 하였습니다.